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시작으로 요즘 컴퓨터에 관련된 도서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독서와 거리가 매우 멀었고, 대학 전공서적류 외에는 지금껏 특별하게
독서하는 행위의 누적시간량이 심각할1 정도로 적었다.
사실 독서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권장되고 중요한 것 이라는 건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흥미가 없다면 정작 본인이 등을 돌리게 된다.
나는 애초에 어려운 것들은 매우 싫어해서 단순화 하는것을 좋아하고 쉽게
풀어서 이해시켜주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솜씨 좋고 기교있는 단어들이 조합된 장문의 글들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고2, 사전적 정의와 같은 단순 명료한
요약글만을 보고 넘기는 것이 습관화 되었으며, 더 나아가 글로만 채워져
있는 도서보단 그림과 삽화가 많이 들어간 책이나 아니면 순도 100% 삽화가
되어있는 만화책, 동영상의 매체를 더 선호하였다. (지금도 선호한다.)
여하튼 이러한 특성을 가진 나는 단순화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단순화는 노력을 최소로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로 단순화를 끝내야 생각의 정리정돈이 되어 가치가 있는 정보로
차곡차곡 쌓인다는 성취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껏 단순화를 시도하면서 한계가 느껴졌다.
도저히 단순화가 안되는 범위의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많은
고민들이 생겼다.
이 범위에 있는 것들은 워낙 방대하고 포괄적이다 보니 남들에게 쉽게
스토리텔링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부피를 가진다는 특성이 있다.
이것을 지금껏 행해왔던 단순화하여 가치가 있는 정보로 내 머리에 담기 위해
단순화의 역방향을 걸어보고 있는 시점인 것 같다.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단순화를 하기 위한 도구를 찾게 되었다.
여러 가능성을 가진 도구를 발견하고 탐색하였으며, 이중에 가장 효과적이고
실현가능성 & 잠재력이 높은 도구는 컴퓨터로 생각되었다.
이때부터 컴퓨터 공부를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였고, 컴퓨터 공부중에 첫번째
계단이 프로그래밍이였다.
프로그래밍 자체는 단순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상당히
어울렸다.
무엇보다 융통성이 제로에 가까운 딱딱한 컴퓨터 언어는 왠지 나에게 있어
격한 공감을 불러왔다.
언어중 이렇게 객관적이고 무뚝뚝한(?) 언어는 본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직도 섭렵하지 못하고 있는 국어문제나 토익문제의 5지선다
중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2~3개의 문항중 무엇을 선택하여야 할지
막막해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언어는 머리를 최대한 굴리면 5지선다중 1개의 문항을
확신하여 답안지에 작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프로그래밍 자체에 대한 공부는 즐겁고 비교적 적은시간안에
성취하였다.
두번째 계단은 Minimal working example 에 대한 구현이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것을 이용해 간단한 예제를 구현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게 하였다.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말도안되는 이상까지 꿈꾸며 약간의 허황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세번째 계단에서 숨이 턱 막혔다.
정작 내가 추구하던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건 두번째 계단이었던 Minimal
working example 에 대한 구현의 트레이닝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숨이 턱 막히고 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복잡한걸 단순화 하기에
앞서 복잡함의 내면을 철저하게 모두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엘런튜링을 시작해 리누스 토르발스와 같은 위인들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는지 궁금해 하며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구를 더 격렬하게 찾고 갈망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잠깐, 이상하게도 이러한 과정을 겪게되다보니 현 나는
아까도 말했던 단순화의 역방향을 걷고 있더라..
주저리주저리 말주변이 없이 글을 작성한 거 같은데 이글의 결론을 정리하면
- 독서는 필요했다(더라.)
- 협업이 절실하게 필요하더라.
- 주변의 연륜이 있는 지인분왈, 결국 자네가 마지막에 찾게될 Key는
‘사람’과 ’인문학적 소양’ 이라고 하시더라.
- 마지막으로 알면 알수록 부족한 것을 뼈저리~~ 느끼게 되더라.